우리는 언제나 사후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천당과 지옥으로 동양에서는 염라가 심판하는 저승세계로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데, 공통된 이야기 하나는 살아있을때 죄를 짓고 살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인생을 돌아보면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등의 죄가 있다. 영화 신과함께는 그 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85579)


)* 본 포스팅에는 스포일러와 개인적인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인 신과함께를 원작으로 한 영화 신과함께는 개봉당시 부터 큰 화제를 모으며 연말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작품이다. 원작을 먼저 보고 나서 영화를 본 나에게 있어서 엄청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니었다는 것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신과함께의 간략한 줄거리는 119 구조대인 자홍이 구조활동 중 사망하게 되면서 저승에서 49일동안 받는 7번의 재판을 통해서 그의 삶과 그의 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 신과함께는 원작 신과함께 와는 조금 다른 노선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는 정의로운 망자라는 설정이다. 원작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 김자홍이라는 캐릭터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저지를 수 있을만한 죄라는 부분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영화속에서는 후반부 설정을 위해서 김자홍을 119 구조대라는 설정과 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정의로운 망자, 귀인 김자홍이라고 설정하고 있다.


우리는 각종 재해, 재난 등의 위험에 처했을때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을 구하기 위해 애쓰다가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으며, 그들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혀주고 고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영화 속 김자홍은 그런 영웅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영웅들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음과 동시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불설수생경에 나오는 거짓, 나태, 불의, 배신, 폭력, 살인, 천륜 이라는 7가지의 죄를 다루고 심판하는 재판의 현장을 그리고 있다. 


영화가 아쉬웠던 점은 제목에서 언급한 것 처럼 과도한 신파적 설정이다. 신파의 뜻은 억지스러운 설정과 연출로 눈물을 자극하는 것의 의미하는데, 억지스럽게 눈물을 유도하기 때문에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여서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영화 신과함께의 과도한 신파 설정은 여러가지로 존재한다. 김자홍이라는 캐릭터는 우리 주변에 있는 영웅이자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인데, 영화속에서 감독은 김자홍이라는 캐릭터로 하여금 우리 사회에 소외된 존재까지 커버해주기를 원했던 것 같다. 이로 인하여 김자홍의 집안 사정마저도 과도하게 가난하게 설정한다.


"너 한테 돈이 신이냐? 진짜 잘못된 신을 만났구나."


초강대왕과의 재판과정에서 김자홍은 돈때문에 사람들을 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애를 썼고, 119 구조대가 직업이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는 표현을 한다. 돈이라는 잘못된 신으로 하여금 그에게는 쉴새없이 일하는 날이 이어졌고 구조활동 중 사망하는 사건이 아니어도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다는 설정이다. 이 부분 자체가 나에게는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다가왔다.


차라리 자홍의 설정은 자홍대로 유지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를 따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두번째는 왜 하필이면 그의 가족들에게는 이런 안 좋은일이 겹쳐서 나타나는 것이었을까? 군대에서 안타까운 사고로 죽게 되는 동생 수홍, 그리고 진급때문에 사고사를 은폐하고 탈영으로 처리하는 박중위의 이야기는 원작처럼 분리된 에피소드로 다루는게 나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눈물을 유도하는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자홍과 수홍이라는 한 가족, 형제의 이야기로 에피소드를 풀어나가게 되는데 여기에 원일병과의 에피소드와 폭주하는 원귀를 표현하기 위한 과한 설정은 정말 공감이 가지 않던 부분 중 하나이다.


세번째는 왜 저승차사를 만능적인 슈퍼히어로로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이다. 강림, 해원맥, 덕춘은 단순히 저승뿐만 아니라 이승에서도 아무런 패널티가 없이 자유자재로 행동한다. 또한, 지나가버린 시간을 읽고, 다른사람으로 둔갑도 하고, 과도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등의 설정은 폭주하는 원귀에 대한 설정처럼 너무 과한 설정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과도한 신파는 자홍이 어린시절 어머니를 살해할려는 부분이다. 부모의 상처와 희생이라는 것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훌륭하지만, 언급한 대로 이 모든 설정이 하나로 묶여있을때 과도한 신파가 된다는 아쉬움이다. 이 부분 부분들을 하나하나 놓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표현했다면 이것은 과도한 신파가 아니라 훌륭한 감동스토리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영화 신과함께는 7가지의 죄를 심판하는 각 재판장면들에서 우리에게 교훈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려고 노력한다. 밤낮없이 일하며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자홍의 모습, 119 구조대가 우리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희생하는 모습들, 소외된 가족들의 대한 이야기를 전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 교훈적인 메세지를 전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좌절하고 시련을 겪으며 한층 더 나은 성장을 한다는 철학적 메세지를 담은 부분들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죄를 짓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알게모르게 죄를 짓게 된다. 누군가를 속이기도 하고, 누군가에 욕설이나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이를 처벌하고 이를 막기위해서 사회는 법이라는 제도를 만들어두고 통제하고 하지말아야 하는 것을 규정한다. 그래도 우리는 죄를 지으며 살아가게 된다. 신과함께가 말하는 저승은 이런 우리가 저지르는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경종을 울린다.


영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승의 모든 인간들은 모두 죄를 짓고 산다. 그들 중 일부는 진정한 용기를 내어 용서를 구하고, 그들 중 극 소수만이 진심으로 용서를 받는다."


"이승의 인간이 이미 진심으로 용서받은 죄를 저승은 더 이상 심판하지 않는다."


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힘든일이고 불가능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를 내어서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과함께가 말하는 올바르게 사는 방법이고, 우리가 이 사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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